FX마진거래 사설 업체 난립…"금융상품 아니라 도박"
환율 전망에 따라 두 종류의 외환을 사고 파는 'FX마진거래'를 한다며 투자자들을 모아 사행성 거래를 부추기는 사설업체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어 주의가 요망된다.
이들 업체들은 'FX마진거래'를 내세워 정상적인 금융상품을 거래하는 사이트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불법 도박사이트'와 다름없다"며 경고하고 있다.
▲ 수익률 87%를 기록할 수 있다는 사설 FX마진거래 사이트의 광고. [해당 사이트 캡처]
이들 FX마진거래 사설 업체들은 '합법적인 FX마진거래'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증권사나 금융투자사, 선물회사에서 정식 허가를 받아 운용하는 상품과는 큰 차이가 있다.
증권사나 선물회사에서 제공하는 FX마진거래는 계약 단위가 최소 10만 달러 혹은 10만 유로이고 증거금률이 10%여서 최소 1000만 원 이상이 있어야 투자가 가능하다. 그러나 사설업체들은 "금액에 제약없이 소액으로도 FX마진거래를 할 수 있다"며 투자자를 유혹하고 있다.
국내 증권사나 해외 승인 업체의 경우, 상품 안내페이지 등을 통해 투자자들에게 FX마진거래의 위험성을 반복적으로 경고하고, 시장 진입 시 주의할 점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해외에서 승인을 받은 FX마진거래 사이트의 경우 수십 페이지에 걸쳐 FX마진거래의 개념과 위험성, 투자 방법 등을 안내한다.
반면 FX마진거래 사설 업체의 경우 간단한 경고 문구 한두 문장으로 주의사항 안내를 마치고 '손쉬운 재테크', '수익 보장' 등 허위과대광고로 고객을 현혹한다.
이들은 거래방식에 대해 특허를 받았다고 주장하거나 거대 증권사와 연동해 투자를 진행하는 것처럼 투자자들을 유인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홈 트레이딩 시스템(HTS) 화면을 가져와 보여주는 정도다.
이들 업체들은 수수료 명목으로 투자자들로부터 금품을 받는 것 외에 별도의 사이트를 개설할 수 있는 '지점 운영권'을 미끼로 한 피라미드식 영업을 해오고 있다.
한 제보자는 "수년 전 FX관련 업체에서 지점 개설을 할 수 있는 지사장 자리를 제안 받았다"며 "지사를 3000만 원에 구매하면 2개 지점을 주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지점을 구입한 사람은 수익의 일부를 지사 또는 본사에 송금해야 하기때문에 초기 투자비용을 회수를 위해 무리한 수수료 영업을 할 수 밖에 없다.
▲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해외에서 승인받은 FX마진거래 사이트, 국내 선물사의 FX마진거래 주의사항, 사설 FX마진거래 사이트의 주의사항. [각 사 홈페이지]
사설 업체가 운영하는 FX마진거래는 1·2·5·10분 후의 환율이 오를지 떨어질지를 맞추는 배팅 구조를 갖고 있다. 배팅한 내용이 맞으면 2배의 돈에서 일정 수수료를 뗀 금액을 받고 틀릴 경우 전액을 잃는다.
외환 가치에 대한 분석과 투자가 아니라 단기 변동을 찍어서 맞추는 동전던지기식의 게임인데다, 수수료가 10~14%에 달해 사이트는 막대한 수수료 이익을 챙기지만 투자자들은 돈을 잃을 수밖에 없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사설 FX마진거래는 파생상품이라기보다는 도박에 가까운 형태"라며 "아주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 정도 단기간의 환율 등락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이런 거래는 금융투자상품이 아니고 단순한 도박에 불과하다는 판결이 있었다"며 "이들은 금융감독원의 감독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관계자는 "2015년 대법원 판결에서 금융상품이 아니라고 판결이 났기는 한데, 도박인지 게임인지 변종 영업인지 등을 놓고 명확하게 선을 긋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어 "도박적인 요소들이 많아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사이트 차단을 요청하고 있다"며 "최근 FX마진거래 사설 업체 관련 1심 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났기 때문에, 모니터링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은 4월 24일 FX렌트 조모 회장에 대해 징역 5년을 선고했고, FX렌트는 폐업을 공지했다. [홈페이지 캡처]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은 지난달 24일 FX렌트의 조모 회장에 대해 도박공간을 개설하고 운용한 죄로 징역 5년을 선고했다. FX렌트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사법부의 판결을 배제하고 사업운영을 지속할 수는 없다"며 4월 28일부로 영업을 종료했다.
대법원은 지난 2015년 사설 FX마진거래 업체 관련 판결문에서 "단시간 내에 환율이 오를 것인지 아니면 내릴 것인지를 맞추는 일종의 게임 내지 도박에 불과할 뿐, 구 자본시장법 제5조 제1항 제1호나 제2호의 파생상품에 해당한다고는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인천지법 부천지원은 이번 판결에서 해당 대법원 판결을 인용해 이들을 도박공간 제공자로 봤다.
사설 FX마진거래 업체들은 '리딩방'이라는 이름으로 고객들에게 어느 방향으로 배팅해야 할 지 안내하는 메시지를 제공하거나 유튜브 등에서 방송을 진행한다. 리딩방에서 업체 관계자가 지시하는 대로 배팅을 하면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처럼 홍보하지만, 실제는 돈을 잃은 사례가 많다.
이를 통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모여 집단소송을 준비하는 네이버 카페, 카카오톡 채팅방 등도 여러 곳 개설됐다. 집단소송 준비방에는 적게는 수백만 원부터 많게는 억대의 돈을 잃은 피해자들이 수십 명 모여 있다.
피해자들의 집단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법무법인 효성 측은 "과거(2015년) 대법원 판례에서 도박임을 판단할 수 있는 여러 조건들을 제시했고, 이번 판결도 그 조건을 기반으로 이뤄진 것"이라며 "유사한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회사라면 대부분 유죄판결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